한국사능력검정 기본 기출문제·모의고사·오답노트·자동채점

2024년02월17일 23번

[과목 구분 없음]
밑줄 그은 '봉기'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 ① 전개 과정에서 집강소가 설치되었다.
  • ② 서북 지역민에 대한 차별이 원인이 되었다.
  • ③ 흥선 대원군이 재집권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 ④ 사태 수습을 위해 박규수가 안핵사로 파견되었다.
(정답률: 50%)

문제 해설

정답> ②
왼쪽 말풍선에 '홍경래 등이 주도한 봉기를 진압하기 위해 관군이 정주성으로 몰려오고 있다고 하네'라는 내용이 나와 있다. 오른쪽 말풍선에는 '봉기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우리에게까지 해가 미칠까 걱정이네'라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를 통해 주어진 자료 속 밑줄 그은 '봉기'는 순조 11년인 1811년에 일어난 홍경래의 난을 가리킴을 알 수 있다[1811.12~18
12.4(음력)].
홍경래의 난이 일어난 주된 원인은 서북 지역민에 대한 차별 때문이었다.
오답 해설>
① 전개 과정에서 (일종의 농민 자치 기구인) 집강소가 설치된 봉기는 동학 농민 운동이다(동학 농민군의 제1차 봉기 후 정부와 전주 화약을 맺고 물러난 시기). 고종 31년인 1894년 7월에 제1차 봉기 주동자인 전봉준(1855~1895)과 전라도 관찰사인 김학진(1838~1917) 사이에 집강소 설치가 합의되었으며, 호남 지방의 각 군현에 설치되었다(호남뿐 아니라 충청도와 경상도, 경기도와 강원도 일부 군현에도 설치되었다는 주장 있음).
③ 흥선 대원군이 재집권하는 결과를 가져온 봉기는 임오군란이다(1882.6~7). 청은 봉기의 책임을 물어 흥선 대원군을 납치하여 중국 톈진 보정부에 억류하였다(1885년 8월 귀국).
④ 시태 수습을 위해 (연암 박지원의 손자인) 환재 박규수(1807~1877)가 안핵사*로 파견된 봉기는 철종 13년인 1862년 2월에 발생한 진주 농민 봉기이다.
*안핵사(按覈使): 조선 후기 지방에서 민란이나 붕기가 발생했을 때 이의 처리[수습]를 위해 파견된 임시 직책이다. 목사, 군수 등 인근 지역의 수령이 주로 임명되었으나 때로는 중앙의 관리인 경관(京官)이 임명되기도 하였다. 안핵사는 사건의 원인과 진행 등의 전말과 상황에 대해 조사하고 이를 중앙에 보고하였다. 또, 사건의 처리 방안을 건의하여 조정의 지시에 따라 이를 수습하려 하였다. 사실 안핵사가 파견된다 하여 특별한 대책을 내놓기 어려웠으므로 관리들은 임명을 꺼려하였다. 또 민란이 일어날 때마다 안핵사가 파견되었던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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